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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은 ‘창신기지 크리에이티브 하우스(이하 창신기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포삭 스러져가는 집을 되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그 마음이, 막연한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힘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듣고싶었다. 타고난 길치이자 방향치인지라 인터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켰다. 엄지와 검지로 화면을 당겨 확대 해보니 지하철 바로 근처였다. 하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넓은 도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인적드문 골목길로 좁혀졌다. 목적지 대신 ‘방 있어요’, ‘여인숙’ 같은 낯선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창에는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쪽방촌이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갈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어쩐지 계속 걷고 싶었다. 골목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던 세 아주머니가 눈인사를 던지지 않았다면 뒤를 돌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길을 꺾자 사진에서 보았던 회색빛의 익숙한 담벼락이 나타났다. 창신기지였다.

창신기지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두 친구의 재회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옛집을 고치기 위해 도시설계를 공부한 고등학교 친구를 성인이 되어 찾아간 영화 같은 이야기. 아쉽게도 <건축학개론> 속 아름다운 로맨스가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만남은 충분히 흥미롭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이상묵 실장이 맞아준다. 그는 디자인디렉터 박중현 씨, 건축가 노경록 씨와 함께 ‘지랩(Z_LAB)’이라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을 운영하며 창신기지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뒤로 또 다른 주인공인 건축주가 얼굴을 내민다.(개인 사정상 실명을 밝힐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 다.) 4살 때까지 이 한옥에 거주했던 그는 재활의료 의사가 되어 창신동으로 의료봉사를 다녀가기도 했다.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마침 그가 이곳에 살았었다는 증거가 안쪽 서재공간에 놓여 있었다. 액자 속 오래된 사진 속에는 집 앞 골목에서 보행기를 타고, 또 돌잔치를 치르는 꼬마가 살고 있다. 건축주와 그의 동생이다. 비록 떠오르지 않는 기억일지언정 그가 삶의 한 일부분을 여기 창신동에 빚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창신동을 깨울 새로운 골목길의 탄생

창신기지에 첫 발을 들였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도감이었다. 여행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숙박 시설은 언제나 배신감을 안기기 일쑤였다. 사진 속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웬 생뚱맞은 공간이 지친 몸을 맞아 주었다. 그런 면에서 렌탈하우스로써의 창신기지는 정직하다. 홈페이지를 통해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딱 그 모습 그대로 공간을 소개한다. 자신감일 테다. 한옥 목구조의 공간적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주문제 작한 카레클린트의 수제 원목가구와 엄선된 패브릭, 조명 모두 창신기지만의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집 자체가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살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것 역시 유효했다. 특히 햇살이 고스란히 떨어지는 마당과 이 집의 지난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가죽나무의 그늘은 마치 창신기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처럼 보였다. 도시의 분주함을 뒤로 하고 잠시 귀를 닫을 수 있는 휴식처이자,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분출되는 창작 공간으로서 창신기지는 이제 그 준비를 마쳤다. 지난해 여름, 두 친구가 폐가나 다름없는 이곳 마당에 앉아 두서없이 늘어놓았던 아이디어들은 겨울을 넘기고 현실이 됐다. 이들이 꿈꾸는 그림은 예상보다 더욱 구체적이다. 건축주의 유년시절을 복원하는 개인 적 차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창신기지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키우는 것이다. 18년 만에 재개발 계획이 해제된 창신동 일대는 어수선하다. 재개발을 기다리며 맥 없이 주저 앉아 있던 집들은 뉴타운 무산과 함께 방향을 잃었다. 창신기지가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고 수익을 창출하는 선례를 남긴다면 이 일대가 몇 년뒤 어떻게 변화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북촌과 서촌, 가로수길과 같은 새로운 골목길의 탄생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보면 볼수록 이곳이 동네의 우범지역이었을 만큼 허름한 폐가였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 지붕은 무너지고 기둥은 공중에 붕 떠있는 기이한 모습의 이곳을 리노베이션하기 위한 방향은 이러했다. 원형의 골격은 최대한 살리되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캐주얼한 감성의 공간으로 만들 것. 그래서 그나마 가장 든든하게 버티고 있던 기둥과 서까래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철근으로 보강했다. 지붕은 슬레이트 골강판을 사용해 모던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기와를 살리지 못한것이 이내 아쉽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따랐다. 창신기지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골목의 담벼락은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 중 하나다. 단열을 위해 벽을 두르고 있던 70년대의 붉은 벽돌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지만 공사중에 무너져 내리면서 U자형의 시멘트 블록으로 대체했다. 담에 설치한 조명은 밤이 되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힌다. 이는 창신기지를 둘러싼 주변과 소통하고 싶은 건축주의 바람이기도 하다.

창신기지의 처음과 끝을 조근 조근 들려주는 이상묵 실장과 건축주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핑계다. 내부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오후 2시의 햇볕 이어찌나 좋았는지 쉽사리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테다. 글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니 좋은 점들만 과하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고백하건대 그날 이후 나는 창신기지의 팬이 됐다. 마당의 히노끼 노천탕을 바라만보다 돌아와야 했던 계절의 야속함이 그저 속상할 뿐이다.

글 송은정 기자 | 사진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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